소리에 집중하며 글을 써본적이 있으신가요? 타탁타탁 소리에 집중하며 글씨는 묘미 타자기로 글써보기에 대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탁탁’ 소리로 시작된 글쓰기: 손끝이 전해주는 리듬
타자기를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무언가 엄숙하고 낯선 존재 앞에 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낡은 철제 몸체와 둔탁하게 눌리는 키, 그리고 무언가 묵직하게 돌아오는 레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키보드에 익숙한 손가락은 처음엔 그 낯선 압력에 당황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손끝에 힘을 주고 하나씩 눌러 글자를 새겨내자 곧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 생겨났다. ‘탁, 탁, 탁탁, 탁…’ 타자기의 소리는 단순히 기계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생각이 물리적으로 ‘들리는’ 순간이었고, 손끝에서 시작되어 귀로 이어지는 창작의 리듬이었다.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경험은 단순한 향수 이상의 것이었다. 키 하나하나가 인쇄되는 방식은 어쩌면 너무 느리고 불편할지도 모른다. 실수하면 바로 고치기도 어렵고, 삭제라는 버튼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아무렇게나 쓰고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마음가짐은 통하지 않는다. 문장을 쓰기 전에는 머릿속으로 한 번 더 곱씹게 되고,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문장은 더 단단하고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소리다. 타자기의 타건음은 글쓰기를 위한 배경음악이자, 나만의 응원가처럼 들렸다. 마치 고요한 방 안에서 나와 기계만이 대화하는 것처럼, 그 소리는 내 생각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소음에서 멀어진 채, 단순한 '소리'가 아닌 '의미 있는 리듬' 속에서 글을 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디지털 기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 감각의 교류는, 어느새 나를 이끌어 더 깊은 몰입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와 소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고 있었다.
삭제할 수 없기에 더 진지해지는 한 줄 한 줄
타자기로 글을 쓰다 보면 가장 처음 부딪히게 되는 벽은 바로 ‘되돌릴 수 없음’이다. 현대의 문서 작성 프로그램들은 수정, 삭제, 복구가 자유롭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쓰면서도 늘 ‘나중에 고치지 뭐’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반면 타자기는 철저히 일방향적이다. 한 글자를 잘못 치면,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종이에 남는다. 물론 수정 테이프나 화이트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깔끔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처음부터 신중해진다. 한 문장, 한 단어를 타이핑하기 전에 더 오래 머뭇거리고, 더 오랜 시간 생각하게 된다.
처음엔 답답했다. 익숙하지 않은 입력 방식과 수정의 어려움은 내 글쓰기 습관에 혼란을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불편함’은 오히려 나를 더 좋은 글로 이끌었다. 문장을 쓸 때, ‘정말 이 단어가 맞을까?’, ‘이 구조가 더 자연스러울까?’ 하는 내면의 질문이 많아졌다. 이전처럼 마구잡이로 쏟아내지 않고, 생각을 더 가다듬고 의미를 정제하게 됐다. 타자기의 키를 누르기 전, 손가락이 잠시 멈추는 순간들이 바로 글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글쓰기의 본질은 결국‘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타자기는 그 과정을 극단적으로 느리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본질에 가까워지게 한다. 실수를 두려워해야 하는 시스템이지만, 그만큼 글에 대한 집중도는 훨씬 높아진다. 단어 하나에 쏟는 시간과 정성, 문장 하나를 완성했을 때의 만족감은 여느 글쓰기 도구에서 느끼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타자기로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글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짊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소리와 감정이 만나는 글쓰기: 귀로 쓰는 마음의 언어
타자기로 글을 쓰다 보면 신기하게도 ‘소리’가 감정과 연결된다. 글자 하나를 칠 때의 압력, 타자기에서 들리는 ‘딱’ 소리의 크기와 속도는 때로 내가 느끼는 감정 상태를 반영한다. 평온한 마음으로 글을 쓸 때는 리듬감 있게 일정한 소리가 나지만,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는 타이핑이 거칠어지고 빠르며, 때로는 꽝꽝 울리는 소리가 난다. 그렇게 타자기의 소리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흔적이 되기도 한다.
이는 디지털 기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손끝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 키보드와 달리, 타자기는 육체적으로 무언가를 남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종이에 새겨진 글자는 잉크처럼 감정을 흡수한다. 그리고 그 글자를 쓰는 동안 울리는 소리는 나만의 음악이 되어 다시 감정을 환기시킨다.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감각적인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글을 쓰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면의 감정 변화에도 민감해진다. 마치 글쓰기가 명상이 되는 듯한 순간도 있다. 손과 귀, 생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몰입의 경험. 그것은 오로지 타자기처럼 아날로그적이고 촉각적인 도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문장이 끝날 때마다 ‘딩’ 하고 울리는 소리조차도 내 글쓰기의 경계를 알려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글을 쓸 때 가끔 타자기를 꺼내게 되었다. 디지털의 효율을 잠시 멀리하고, 감각과 감정을 곱씹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글쓰기가 단순히 내용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행위라면, 타자기는 그 마음을 더 천천히, 깊이 있게 전달하게 해주는 도구였다. 귀로 쓰고 손끝으로 새기는 이 경험은, 내가 왜 글을 쓰는지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어줬다.